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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스펜스에 대한 봅시다
    카테고리 없음 2020. 1. 20. 13:22

    <미드소마>는 확신적으로 친근한 영화가 아니다. 이전 작품이자 '앨리 에스터'의 데뷔작인 <유전>보다 더 기위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관객들의 호불호가 더 극명하게 갈리며, 기괴한 장면과 고어적인 요소에 따라 평단에서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미드소마>는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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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공포영화처럼 <미드소마>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접촉을 모티브로 합니다. 크리스티안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세계'는 우리가 1조가 적게 경험하는 현대 사회에 다양한 환경 과학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존재합니다. 반면, 스웨덴 북부 "작은 마을세계"는 공동체 사회이며, 모든 구성원이 생각과 감정을 함께 합니다. 각각 밤과 낮으로 표현되는 두 세계는 그렇기 때문에 양립할 수 없다. <미드소마>는 펠레를 매개로 마주한 두 세계를 통해 서스펜스의 본질을 서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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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은 '어떤 봉잉풍 1이 1어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본인 그 상황이 1오봉잉눙을 방지 때문에 개입할 수 없을 때, 관객은 서스펜스를 겪는다'과 이스 트리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설명은 <히치콕의 대화>에서 제시한 "테이블 아래의 폭탄"으로 구체화된다. 테이블에 앉아서 두 사람이 스토리를 본인에게 누르는 장면을 가정해보자. 카메라가 테이블 아래에 설치된 폭탄을 조명하면 관객들은 폭탄이 언제 터질지 긴장하고 이때 서스펜스가 발생한다. 그렇게 본인 폭탄을 조명하지 않은 채 폭발이 1어, 본인의 면 서스펜스가 없는 서프라이즈가 발생한다. 정리하면, 서스펜스의 가장 큰 특성은 관객이 사건 발생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바꾸고 이수 트리 하면 어떤 1이 1어 날인지를 아는 소리에도 관객은 스릴 껌 가령은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 서스펜스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것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것인가? <미드소마>는 이 질문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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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소마>는 이미 말한 히치콕이 제시한 서스펜스의 정의를 충실히 따른다. 대표적인 예로 벼랑 끝 장면을 살펴보자. 비록 충격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사일지라도 관객들은 충분히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할 수 있다. 감독은 펠레의 대사와 행동을 빌려 벼랑 끝 이벤트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했고 카메라로 해머까지 담아내며 그 예기를 구체화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는 절벽 맨 아래에서 두 노인을 익스트림"로 앵글샷(extreme low angle shot)"으로 그 후, 두 노인은 절벽 끝에서 따돌리기도 한다. (이건 관객만의 상황이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다른 세계를 관찰하는 상황에서 벽화나 그림을 통해 어떤 하나가 펼쳐질지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은 관객이 서스펜스의 본질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인 시간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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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どれ어느 하나가 생겨날까"를 해결한 인물들은 목하 なぜ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간다. 띄엄띄엄 펼쳐지는 이상한 형세 속에서 주인공들은 펠레에게 "왜?"라는 질문은 자주 던지지만 "고장 풍습"이라는 답만 돌아올 뿐이다. 실제 어린이의 초등학교에 두 개의 세계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곳에서 1번째 공포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절벽'의 핵사는 크리스티안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렵고, 자연의 순환이라는 관점을 더합니다.하지만 얼굴을 가리는 행위는 비인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2번째 공포는 결여에서 비롯되고, 대니로 가장 현저하게 표현된다. 대니는 "절벽길" 행사를 통해 자신이 가진 결여(가족의 대나무 소음)를 마주하고 더 큰 공포를 느낀다. 그의 공포는 같은 공동체 사람들에 의해 증폭된다. 마크는 그녀의 상처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를 비하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사회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포를 "막장"하기도 하지만 공동체 내부에 의한 공포라는 점에서 처음의 공포 형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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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미드소마>는 서스펜스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본질에 대해 깊이 본다. 하나의 관심사는 '미지의 공포'와 '결로의 공포'를 동시에 겪는 대니가 미지의 세계와의 화합을 통해 결여를 극복하겠지만, 이번에 와서 <미드소마>는 전혀 다른 주제의식을 갖게 된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할 것이라는 점에서 <미드소마>는 대니의 성장영화로 볼 수 있다. 홀가촌락은 핵가족 구분 없이 전체가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함께하는 것 뿐만 아니라(물리적 공유) 같은 sound와 행동으로 희로애기락을 함께 하기도 한다(심리적 공유) 철저한 "연결된 사회"입니다. 이는 "가족구성원"과 "공감"이라는 대니의 결여에 대한 치유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점차 홀가촌락에 동화되어 안정되는 대니의 상황은 자신의 손과 발에서 풀이 돋는 환영으로 대변되기 시작하며 배운 적이 없는 스웨덴어로 소통하는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난항을 겪던 한 커플 앙타카운의 이별을 그린다는 점에서 <미드소마>는 로맨스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카메라는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서로 느끼는 심리의 온 하늘을 조명할 것입니다. 대니가 원했던 것은 단지 공감였지만 크리스티안에게 이것은 부차 가까워질 뿐입니다. 결국 크리스티안이 떠난다는 두려움에 배신당한 듯한 대니는 이별을 택할 것입니다. 크리스티안을 미드소마의 제물로 지목하면서 이야기입니다. 트라우마가 있는 여성과 우유부단한 남성의 슬픈 이별 이야기 (실제로 아리에스타는 이 영화에 대해 공포영화가 아닌 로맨스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고, 자신이 겪은 이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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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미드소마>의 주제가가 변주되어 결국 먼저 발생한 기이한 사건들은 이해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시 내용하여 앞서 등장한 룬 글자나 비윤리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풍습은 단지 서스펜스를 유도하기 위한 맥거핀이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자발적인 추리를 유도하여 서스펜스를 형성하고 결론적으로 대니의 감정을 조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주제의 측면에서도 이내용 측면에서도 알프레드 히치콕과 맥을 같이 합니다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미드소마>는 고전적인 서스펜스를 택했지만 오히려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실 히치콕의 서스펜스를 철저히 따르는 연출은 <유전>에서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는 알리·에스타가 갖고 있는 히치콕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혹시 써프라이즈가 더 만연한 현대 공포 영화 산업에 대한 1침 1지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리에스테르의 향후 행동은 바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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